참여정부 2년 반 변화와 성과③권력기관 제자리 찾기...대통령의 한결같은 대답 “원칙대로 하라”
오민수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역대 어느 정치권력도 통치 수단의 핵심인 권력기관의 장악을 스스로 포기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부패 청산과 함께 권력기관 제자리 찾기를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삼았다.
권력기관이 제자리를 잡고 스스로 특권을 철폐해서 정치·경제·언론 등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린 유착과 공생관계를 청산했을 때, 그 기반 위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정권의 도덕성 확보를 위한 상투적 구호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선진 사회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마련해야 할 ‘국가적 인프라’였고, 절박한 국가 과제였다.
최근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평가한 참여정부 전반기 성적표는 엄혹했고,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비서실은 지금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국민 여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따가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국민은 참여정부가 이루어낸 여러 성과도 지적했는데, 그 중에서 맨 앞에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의 특권과 특혜를 철폐했다는 점을 올려놓고 있다. 비서실에서 권력기관을 상대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민정수석실로서는 다시 한번 신발끈을 동여매고 국민의 기대와 질책을 가슴깊이 새겨야 할 순간이다.
돌이켜 보건대 ‘권력기관 제자리 찾기’ 2년 반의 여정은 말 못할 사건도 많았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사회 전반에 알게 모르게 뿌리내린 권력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관성의 잔재를 털어내는 과정은 고단했고, 권력을 향한 은밀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더욱 힘겨웠다.
“반드시 검찰을 장악하라”
정권 출범 전후 문재인 민정수석은 이런저런 소개로 전임 정부 민정수석실 관계자들과 접촉할 기회를 여러 차례 가졌다. 대개 수석 또는 비서관을 지낸 분들이었다. 다루는 사안 하나하나가 워낙 예민하다보니 그들의 조언은 때로는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참여정부 민정수석에게 당부하는 압도적인 충고는 이랬다.
“민정수석실 업무의 80~90%는 검찰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검찰을 장악해야만 국정운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충고였다. 아니 무서운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전임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 검찰 장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는 안과 밖이 다르지 않았다. 특히 각종 정치적 사건으로 사법당국의 수사망에 걸려든 사람들의 경우, 검찰 권력을 놓아버린 ‘민정수석실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에는 피울음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대통령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언론 지상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주변 지인들이 겪은 고초와 피해가 적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사법당국에 대한 대통령의 통제와 조율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통령과 민정수석실을 향해 듣기 민망한 원망을 쏟아내기도 했다. 인간적 안타까움과 번민이 엄습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했던 것은 한마디 원망도 없이 가시덤불 속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가는 대통령 주변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였다. 지난 2년 반 대통령과 민정수석실은 그렇게 살과 뼈를 내어주지 않고는 넘을 수 없는 고비를 상처투성이가 되어 넘어왔다.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권력기관 제자리 찾기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의지는 ‘더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헌법의 틀 안에서 정당한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현실 정치인으로서 역대 정권을 체험하고 지켜보면서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는 해서도 안되고, 되지도 않는다’는 현장의 교훈을 잊지 않은 까닭이기도 했다.
기실 역대 정권의 말로가 그러했다. 집권 초기 청와대의 힘이 서슬 퍼럴 때는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가 가능했고 그 통제 위에서 수월하게 국정을 운영했지만, 임기 말 권력기관이 청와대의 통제를 벗어나면 예외없이 감당키 어려운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 직위의 권한을 법률적 틀을 벗어나 사용하다보면 나중에 거꾸로 당하게 되어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역사의 교훈을 초등학생처럼 정직하게 지키고 있는 셈이다.
“파이를 키우지 말라”
지금도 대통령은 문재인 수석을 비롯한 민정수석실 책임자들에게 금과옥조처럼 강조하는 말이 있다. “파이를 키우지 말라.”
정권 운용 과정에서 생기는 약점이 발견되면 그때그때 공개하고 처리해서, 약점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 훨씬 더 큰 손상을 입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는 뜻이다. 참여정부에서 성역과 금기는 없다. 힘으로 진실을 가리지 않으니 성역과 금기가 생길 틈이 없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은 아마도 이러한 자계(自戒)와 권력기관의 속성에 대한 경계가 참여정부에서 정치와 언론, 정치와 경제, 정치와 권력기관간의 유착을 끊어내는 힘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이처럼 권력기관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국민 품으로 되돌려주겠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는, 대선자금 수사부터 도청 사건 직전의 유전·행담도 사건까지 예외 없이 원칙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최근 발생한 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사건도 원칙대로, 진실대로 처리하는 쪽으로 일찌감치 가닥이 잡힌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국가 권력기관의 제자리 찾기에는 또 다른 동반자가 필요했다. 바로 권력기관 자신이다. 지금도 청와대와 권력기관의 관계가 100% 정상화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록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출발했기는 하지만, 권력기관 스스로도 치열하게 과거의 관행과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도 모르게 청와대의 ‘관심 사항’을 캐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신이 정작 섬겨야 할 국민은 잊고 조직의 폐쇄적 생존 논리에 매몰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을 터이다.
초기에는 중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권력기관의 타성이 드러나곤 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대통령의 뜻부터 살폈다. 그때마다 그들에게 돌아간 대답은 한결 같았다. “원칙대로 처리하라.”
이제는 권력기관들도 대통령의 예외 없는 원칙 고수에 상당히 익숙해졌다. 일일이 청와대의 기류를 살피지 않아도 별 탈이 없고, 원칙대로 묵묵히 일만 하면 그만이다. 타성을 깨고 제자리를 잡는 데 2년 반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권력기관 수뇌부를 임명하거나 그들로부터 보고를 받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렇게 당부하곤 한다. “행여라도 (임명권자를 위해) 공을 세우려고 하지 말라.”
청와대에 민정수석실이 필요없는 날
결코 형식적으로 건네는 정치 수사(修辭)가 아니다. 권력기관을 정치 목적으로 운영하지 않겠다는 점을 의지로서 천명하고 실행하겠다는 진심어린 주문이다.
이는 누구보다 현재 권력기관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잘 알고 있다. 만약 정치 목적으로 활용키 위해서 인사를 했다면 그 분들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재인 수석에 따르면, 인사 추천을 할 때 대통령은 이러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정치적 고려’로써 해석되지 않는 인물을 고르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사소한 오해조차 피하기 위해서….
필자는 인수위 시절 민정수석실 인수인계 실무를 맡으면서, 권력기관을 지휘하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좌하며 대통령 주변 문제를 처리해온 역대 민정수석실의 권한과 권능에 적잖이 놀랐다. 언론계에 몸담으면서 곁눈질과 귀동냥으로 느꼈던 것과 현실 체험의 차이는 매우 컸다. 한마디로 막강했다.
그러나 임기가 절반이 지난 지금 민정수석실의 권한과 권능은 권력기관들이 제자리를 잡은 것에 반비례해서 약해져 있다. 아니 이제야 정상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민심 보고서와 주요 인사 동향보고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언론 매체와 여론조사로 민심의 흐름은 즉각 체크된다. 주요 인사를 감찰할 일이 없으니 동향 보고도 필요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이런 류의 보고를 받지 않는다.
남은 절반의 임기 동안 권력기관이 완전하게 제자리를 찾는다면 민정수석실의 권능은 더 크게 변화해 있을 것이다. 요즘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의 미래를 법률 보좌를 전문으로 하는 조직으로의 변모까지 구상중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자리를 ‘인간으로 구현된 권력’에서 ‘시스템으로 구현된 권력’으로 바꾸려는 부단한 노력의 와중에 권력기관이 제자리를 찾고 민정수석실의 간판이 바뀐다면 그것은 소멸이 아니고 발전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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