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도서,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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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05-08-01 13:30
서울--(뉴스와이어)--골목안 풍경의 사진작가 김기찬 35년 작업의 결정, 처음 소개되는 컬러 사진! 골목안 풍경에 대한 시인 황인숙의 섬려하고 애틋한 통찰
“서울의 골목을 찍은 사진을 서울의 골목에서 홀로 사는 시인이 읽는다 ”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의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김기찬은 지난 30여 년 동안 서울의 골목안 풍경을 고집스레 프레임에 담아 왔고, 글을 쓴 시인 황인숙 역시 서울에서 태어나 남산 언저리 골목 동네에 터를 잡고 자신의 독창적인 시력을 다듬어 왔다. 두 사람은 ‘서울’이라는 극적인 역동성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자신들의 육체를 한정해 두고 일관된 신념으로서의 예술을 수행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여기에서 두 사람 사이에 공동의 작업을 구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서적 공감이 움틀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서울은 무엇인가’, ‘서울의 골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진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사진작가는 아마도 자신의 사진작품 속에 시나브로 그 대답을 마련해 놓았을 터이고, 시인 역시 자신의 체험을 사진과 대비시키면서, 그 사진을 뛰어넘는, 풍경 너머에 오롯하게 존재하는 자신만의 질문과 대답을 다시금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말하자면, 지금은 사라져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서울의 골목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가장 애틋한 보고서다.

이 책의 주제는 ‘사람들’ ‘꽃과 동물’ ‘지붕과 기와’ ‘담장과 벽’ ‘적막과 그늘’
골목은 얼핏 보면 좁고 협소하고 누추한 세계다. 그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바라볼 때 골목은 과연 남루하다. 그곳은 결핍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더욱이 넓은 대로와 하늘을 찌를 듯한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 그리고 다이내믹한 고가도로들이 위용을 자랑하는 도시 속의 골목은 그 남루와 결핍이 더욱 도드라진다.

하지만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골목에 살지 않아도 골목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골목이 얼마나 넓고 깊고 풍요로운 세계인지를 잘 안다. 골목이 가지고 있는, 골목이 거느리고 있는 깊이와 넓이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골목의 웅숭깊은 세계는 과연 어떤 것들로 구성되어 있을까?

골목에는 놀랍게도 온갖 꽂과 동물들이 있다. 골목 사람들은 꽃과 동물에 대해 둔감하리라고, 골목 밖에 사는 사람들은 함부로 추측한다. 하지만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꽃과 식물의 화사함과 만나고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연출해 내는 발랄함과 마주친다. 김기찬의 사진은 이 조화로운 생명의 서식지로서의 골목을 역동적으로 포착해 내고 있으며, 현재에도 골목에서 살고 있는 황인숙의 글은 꽃과 동물들과 교감하며 지낸 골목에서의 삶이 지닐 수 있는 감동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꽃은 골목 사람들의 웃음과 한숨을 먹으며 자라고 동물들은 골목 사람들을 닮아 착하고 느리게 움직이는데, 이 아름다움을 목격하는 것은 온전한 우리 몫의 행운이다.

골목에는 또한 사람들이 있다. 왜 사람들이 없겠는가. 이 넓고 넓은 세계에서 하필이면 한 골목에 모여 살게 된 사람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그 애틋한 친밀감은 골목에 들어가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골목에는 ‘까르르’ 터질 것 같은 웃음을 내지르며 뛰노는 아이들이 있고, 삶을 이미 알아버린 말간 얼굴의 노파도 있다. 그들은 골목에서 수없이 마주치며 침묵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골목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 시간이 함께 견디고 함께 희망해야 하는 생의 절실한 순간임을 깨닫고 서로의 존재를 깊이 이해한다. 김기찬의 사진과 황인숙의 글은 이 골목 사람들에 대한 순연한 애정의 헌사에 다름 아니다.

골목에는 또한 지붕과 기와가 넘쳐난다. 낮고 연약한 지붕과 기와들은 골목의 세계가 얼마나 소박한 신념들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지붕과 기와는 그 높은 달동네 골목에서 소란스러운 비와 우박을 견디고, 바람을 견디느라 쉽게 헤지고 낡는다. 수선스러운 생의 시련은 깨진 기와에, 생채기처럼 구멍 뚫린 지붕의 모습에 이르러 생생해진다. 지붕과 기와는 골목안의 삶이, 막연한 감상을 뛰어넘는 절박한 생존조건으로서의 실체와 떨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골목에는 담장과 벽이 있다. 그 벽은 너와 나의 세계를 나누는 벽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것으로서, 함께 지키는 것으로서 벽이다. 담장과 벽은 골목의 뼈대를 구성하면서 삶의 존재 조건으로서 골목의 외형적 특질을 만든다. 사람들은 이 벽과 담장에 기대어 골목에서의 삶을 구체화하고 전략화시킨다.

종종 취객의 오줌이 뿌려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토사물로 더럽혀지기도 하지만, 담장과 벽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절실한 체험의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김기찬의 사진은 이 담장과 벽의 실체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고 황인숙은 그 담장과 벽으로부터 생이 숨겨 두고 있는 은연한 본질을 시적 직관으로 날렵하게 추출해 낸다.

골목에는 또한 밀착되어 있는 세계만이 거느리는 적막과 그늘이 존재한다. 적막과 그늘은 물리적으로 협소한 공간인 골목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이자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이 적막과 그늘은 생의 어둠이 감추고 있는 눈부신 진실을 골목이 의미 있게 함축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 준다. 적막과 그늘, 넓고 화려한 세계에 대한 조용한 야유. 골목은 그렇게 저항마저도 겸손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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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017-718-8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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