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제205회 정기공연 ‘물보라’
국립극단 제205회 정기공연이자 ‘대표 레퍼토리 복원 및 재창조 작업’의 일환으로 오르는 <물보라>는 1978년 국립극단 제88회 정기공연으로 초연된 이후 “한국 리얼리즘 연극의 비약적 도약으로 국립극단이 이룩한 공전의 업적”(연극평론가 한상철)이란 평가를 받았던 작품.
어느 작은 어촌에서 만선제(滿船祭)를 벌이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그 안에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삶의 욕망과 죽음의 그림자를 표현, 한 편의 서사시를 그려내고 있다. <물보라>는 무엇보다 ‘고(告)풀이’나 풍물패와 같은 전통연희와 토속문화가 현대연극 무대 위에 적극적으로 오른 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전통의 재발견과 현대적 수용’을 통해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연출가 오태석(吳泰錫·65)의 연극세계에 방향점을 제시한 작품이기도 해 연극 애호가들에겐 더없이 의미 깊은 작품이기도 하다.
<물보라>는 1978년 9월 15일부터 24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에 올려져 첫 선을 보였고, 이어 같은 해 11월 연장공연을 가졌으며, 1981년 제3세계연극제에 참여하였고, 1989년 3월에 역시 국립극장에서 재공연되었다. 오태석의 작품들이 여러 극단에 의해 공연된 것에 비해 <물보라>는 오직 국립극단에 의해서만 공연되었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물보라>는 명성으로만 회자되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 편.
특히 1987년 초연 때는 “잊혀진 우리의 토속적 심성을 형상화시킨 집단 앙상블의 개가”(연극평론가 이상일)라는 평과 함께 다시없는 명공연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대배우 김동원이 대사 한 마디 없는 단역으로 출연해 화제가 되었고, 장민호, 백성희, 정애란을 비롯해 권성덕, 이호재, 심양홍, 손숙, 전무송, 정상철 등 쟁쟁한 배우들이 총동원되었다. 또 국창 김소희의 지도 아래 은희진 명창을 비롯한 최고의 소리꾼들이 가세해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다는 것.
국립극단이 1970년대의 창작극 대표작으로 선정, ‘대표 레퍼토리 복원 및 재창조’ 작업으로 올리는 2005년의 <물보라>는 초연된 지 27년, 재공연된 지 16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이번 공연에는 진도씻김굿의 대가 박병천(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기능보유자·72)이 직접 출연해 ‘고(告)풀이’를 실연하며, 그의 아들인 박환영(서울시국악관현악단 부수석)을 비롯해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대표주자들이 시나위 반주팀과 소리꾼 등으로 출연해 보다 실감나는 무대를 선보인다.
무대(무대미술 여운덕)는 온통 ‘검은빛(black tone)’이다. 검은 바다와 검은 땅, 검은 폐선과 검은 당집 등 검정으로 물든 무대 위에 오직 사람들만이 흰옷과 알록달록한 장식들로 빛을 발한다. 특히 고풀이 장면에서는 천 송이의 흰 종이꽃들이 무대 위에 흩어져 흑백의 강렬한 충격을 예고하고 있다.
1978년 ‘용만’ 역으로 출연했던 전무송(64)이 ‘선주(船主)’ 역으로 다시 출연해 눈길을 끈다. 또 극의 중심이 되는 백치 여인 ‘각시’ 역에는 <떼도적>에서 ‘아말리아’ 역을 맡았던 이은정(29), 각시의 남편이자 모자란 남자 ‘일렬’ 역에는 박용(39), 각시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품고 사는 ‘신기리’ 역에는 김종구(50), 각시와 모종의 관계를 맺지만 결국 각시의 칼에 찔려죽는 풍물패거리의 우두머리 ‘용만’ 역에는 서상원(38)이 맡는다.
<물보라>에는 30여 명의 출연진 모두가 주인공이라 해도 될 만큼 마을사람 각각 개성을 가지면서 집단성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연출가 오태석과 출연자 전무송은 이번 <물보라>가 27년 전 초연작에 비해 ‘시간의 흐름과 공간적인 짜임새’의 표현이 보다 정돈되고,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제대로 자리 잡고 실연되는 고풀이와 풍물패, 토속적인 몸짓들은 현대극 못지않은 독특한 신선함으로 다가가 젊은 세대가 보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것.
오태석 작품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물보라>는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줄거리가 뚜렷하고 이해하기 쉬워 보는 재미가 크다. 2005년 새롭게 선보이는 <물보라>를 통해 전통소재 연극의 세련된 현대성을 발견하는 것 또한 관람의 큰 재미가 될 것이다.
국립극장 개요
1950년 창설한 국립극장은 우리 공연예술계 현대사의 주무대였다. 서울 중구 장충단로 남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큰 해오름극장과 달오름, 별오름극장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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