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미술연구소 논평-이동천 저 ‘진상-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을 비평한다
2.저자 이동천씨는 이 책에서 중국 고서화 감정학을 우리 고서화에 직접 대입시키는 큰 실수를 하였다. 나는 수년전에 발표한 「고서화 감정학 서론」에서 “이 책(감정학)을 쓰는데 중국이나 일본의 감정론이 부분적으로 참고가 되기는 하였으나, 중국이나 일본의 서화나 미술사, 고대사회의 역사적 여건과 사회적 풍토 등등이 우리와 전혀 달랐던 만큼, 그들의 고서화 감정 연구서는 우리에게 얼마간의 참고는 될 지언정 절대적인 도움이 되지를 못하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옛 중국과 조선의 문화 풍토는 너무나 다르고, 또한 미술품을 애호하거나 창작하는 정황과 위변조의 풍토 및 역사도 다르다. 중국은 미술품의 수요가 많아 위변조가 매우 성행하였지만, 우리나라는 미술품의 수요가 매우 적어 화가 당대의 위변조는 많지 않았고, 대개의 위변조품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시도되었다. 그러므로 “이를 관과하고 중국의 고서화 감정법으로 우리의 고서화를 감정한다면 우리 고서화 진품의 상당수가 위작이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이라고 이미 오래전에 예측되어 왔는데, 이제 그 우려가 이동천씨에 의하여 현실화되었다.
3.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등의 작품을 그들의 아들이나 제자, 그리고 후대인들이 모작한 사실은 분명하나, 겸재나 단원 작품의 시대별 변천은 살피지도 않고 그들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제 멋대로 재단하여 위작으로 치부한 것은 그들의 작품을 형편없는 것으로 폄하하는 중국감정학자들의 영향력을 보는 듯하다.
더군다나, 그는 『진상』에서 당대 최고의 감식 및 감정가였던 위창 오세창이 추사의 작품을 위작한 것으로 지목하였다. 어떻게 위창이 배관한 것을 가지고 그를 위작자로 단정한단 말인가? 위창도 감식 및 감정에 실수를 한 바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위창의 인품과 미술품 애호정신을 모독한, 위창을 너무 모르는, 위창을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인식하고 있는 소치에서 빚어진 망발(妄發)이라 아니 말할 수가 없다.
또한 그는 고서화가 창작된 종이와 변색된 물감 운운하지만, 그는 서지학이나 서화 재료에 대한 바탕 지식이 없는 것 같고, 중국의 고서화 박매장(경매장)에 출품된 중국 고서화를 별로 둘러보지 않은 것 같다. 물감이 변색하는 것은 산화은이나 아교(접착제)의 과다 사용이 원인이다.
이외에도 상당한 문제점이 있지만, 그가 보여준 섣부른 시도의 문제점과 상처를 입힌 고서화를 일일이 지적하며 반론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동천씨는 『진상』에서 고서화 감정의 문제 제기를 시도한 것 정도로 최소한의 의미를 주고자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아직 중국에서 배운 틀을 넘어서지 못하고 갇혀 있으며, 우리 것에 대한 공부는 매우 덜되어 있다는 것은 지적하고자 한다.
이는 그가 스승으로 모신 양인개는 중국의 감정학계에서는 중앙학계의 학자가 아니라 변방학자(邊方學者)로 취급받고 있는데, 양인개의 학문적 한계가 그 제자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듯싶다. 저자는 중국에서 고서화 감정법은 배웠지만, 그것을 우리의 민족주의사관에 입각하여 우리 것 화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그의 글은 중국의 감정학을 흉내 낸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을 받을 수 있다.
4.1990년 이래 우리 고서화 연구가와 수집가들이 중국의 유명한 고서화 감정가인 서방달 사수청 유구암 양신 등의 중앙학자들과 그 제자들을 수차 만나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의 우리 고서화 연구가들에게 한결같이, 조선은 옛 중국의 변방국가라는 착각 속에서 우리의 고서화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였다.
우리가 단원이나 겸재의 산수를 다룬 국내의 화책이나 풍속화책을 보여주면, 항시 그들은 “그것이 그림이냐”는 식으로 폄하하여 왔고, 오원이나 소림의 작품을 보여 주면 그제서야 “제법 된 그림”이라 하였다. 그 정도로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에 빠져있는 중국의 감정학 대가들이 우리 고서화를 보는 감각이 우리와는 차이가 큰 것이다. 그들은 우리 역사 가운데 살아 숨쉬어 온 우리 민족의 예술적 심성을 모른다. 따라서 우리 미술을 애호하는 주체적 감정학의 시각에서는 그들의 대중화주의의 틀에서 우리 문화재가 재단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품에는 민족적 감성과 국적이 숨쉬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상』이란 저술은 아직은 설익고 벌레 먹은 과일이라 평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 고서화의 진상(眞相)이 아니라 공상적(空想的)인 허상(虛想)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가진 독자들에게 일정한 자극제(藥)가 될 수 있겠지만, 민족주의적 판단력이 없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우리 문화재를 죽이는 맹독(猛毒)으로 작용할까 우려스럽고 개탄스럽다.
이양재(李亮載) 고려미술연구소(高麗美術硏究所)
고려미술연구소 개요
고려미술연구소는 미술과 문화재를 연구하는 사설 연구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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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9일 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