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주인 후보, 우주인 훈련일기 (17편)
훈련일기 (고산)
‘스포르트 잘(спорт зал)’
스타시티의 여러 장소 중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 러시아어로는 <스포르트 잘(спорт зал)>이라고 하는데, 아마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그것이 <스포츠센터>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곳을 참 좋아한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지난 몇 개월간의 훈련기간 동안 이곳에서 땀도 많이 흘렸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훈련 시간표에는 보통 일주일에 이틀, 두 시간씩의 체력 훈련이 계획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려니와 그 밖의 몇 가지 이유로 애착이 많이 가는 이곳을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찾는 편이다.
스포츠센터의 시설은 최신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체력을 단련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오래된 시설 덕분에 좋은 점도 있다.
내가 사용하는 남자 탈의실의 사물함은 초창기 우주인들이 사용하던 그대로다. 그리고 한구석에는 유리 가가린이 생전에 사용했던 사물함에 그의 운동복, 운동화, 테니스 라켓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데, 가끔 그의 사물함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유리 가가린이라는 사람이 신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땀을 흘렸던 선배이자 동료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인류가 우주에 발을 내디딘 지 불과 몇십년 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 광활한 세상이 아직 우리의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고 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따라서, 이곳은 나에게는 체력을 단련하는 장소인 동시에 꿈을 신선하게 가다듬고 심장을 새로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스포츠센터는 또한 스타시티의 <사랑방>과 같은 장소이다.
우리 한국 우주인 후보를 포함한 모든 우주인은 각자의 교육 스케줄이 따로 있어서 개별 훈련 중에는 서로 만날 일이 전혀 없지만, 체력 훈련은 모두 이곳에서 받기 때문에 종종 여러 명이 함께 운동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내가 여러 명의 러시아 우주인들과 친해진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우리 한국 우주인과 함께 소유즈에 탑승하게 될 '세르게이'와 '알레그'를 처음 만난 곳도 이곳이고, 가장 친한 러시아 우주인 중 한 명인 '똘랴'를 만난 곳도 이곳이다.
'똘랴'와 내가 가까워진 데에는 그와 나 둘 다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자주 만난다는 사실 말고도 재미있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스타시티의 식당에서는 우주인들에게 하루 세끼 식사를 제공하는데 점심은 잘 나오는 편이지만, 아침과 저녁은 매일 똑같은 메뉴가 나오기 때문에 식당에서 세끼를 다 해결하는 사람은 불과 서너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중의 두 명이 바로 나와 '똘랴'이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동병상련의 끈끈한 동지애와 같은 것이 있다. 식당의 메뉴가 다양하진 않아도 우리 '식당 클럽'이 다른 누구 못지않게 건강한 걸 보면 식당의 음식이 나름대로 괜찮은 모양이다.
스포츠센터의 수영장에는 사우나가 하나 딸려 있는데 이곳은 러시아 우주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장소 중 하나이다. 혹시 우주인에 대한 환상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곳에 한번 들러볼 만하다. 이곳에서는 아줌마 못지않은 우주인들의 수다를 들을 수 있다.
가벼운 농담에서부터 세상 사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사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다는 바로 선배 우주인들의 경험담이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선배 우주인의 경험담이 시작되면 다들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게는 베테랑 우주인인 '샤리포프'가 들려준 자신의 첫 번째 우주유영의 경험담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우주로 통하는 해치를 열고 저 아래 지구를 내려다보니 너무나도 깊고 아득해 보여서 선뜻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한참 망설이다가 눈을 질끈 감고 우주선 밖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말로는 정말 설명하기가 힘들다며 더듬더듬 내놓았던 그의 이야기에 내 심장이 더 두근거렸던 것 같다.
그런데 베테랑 우주인 '샤리포프' 자신도 이곳 사우나에 앉아서 선배 우주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 설레 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안 그래도 귀여운 인상인 '샤리포프'의 얼굴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곳에는 우주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트레이너들과 관리하는 아주머니들을 포함해서 10여 명의 분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우리의 트레이너인 '이고르'의 50번째 생일이어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몇 명의 우주인이 스포츠센터에 모여서 생일 파티를 열었다. 음식은 스포츠센터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께서 직접 준비하셨다. 그리고 모인 친구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고르'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를 위해서 또는 그를 세상에 있게 한 그의 부모님을 위해 건배를 제의했다. 여러 명의 사람이 각자 기억하고 있는 그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중간에 몇 번씩 휴식시간(그들은 이것을 Smoking Break라고 한다.)을 갖고 다시 건배 제의를 시작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훈훈한 정이 오고 가는 '이고르'의 생일 파티를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만난 좋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스스로를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사람 만나는 운이 가장 좋다고 늘 생각해 왔다. 가족, 친구들, 선배, 후배, 동료…. 그동안 너무도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받았다. 내가 오늘 이곳 러시아에 우주인 후보가 되어 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내 곁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이곳 스타시티의 <스포르트 잘(спорт зал)>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곳이 내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는 장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운동기구로 가득 찬 이곳이 그렇게 포근하게 느껴질 리가 없지 않은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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