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억2500만원에 팔린 중국 유화 서비홍의 ‘우공이산’
<우공이산>이란,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의 철학 사상을 기술한<열자> <탕문편(湯問篇)>에 수록된 우화에 의하면,
“먼 옛날에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玉山)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두 큰 산이 집 앞뒤를 가로막고 있어 왕래에 장애가 되어, 우공은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나는 저 두 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이 말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은 무리한 일이라며 반대했다.
"아니, 늙은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이예요? 또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리고? 발해(渤海)에 갖다 버릴거요."
그러나 이튿날 아침부터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하였다. 한번 갔다 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지수(知未 )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녕'이라며 비웃자 우공은 태연히 말하였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 산 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다.
산이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사신은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 과아(嚜娥)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어 태행산은 삭동(朔東)에, 왕옥산은 옹남(雍南)에 옮겨 놓게했다고 한다.”
서비홍이 이 작품을 그린 1940년은 항일전쟁시기로, 그는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항일전쟁을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 항일전쟁을 하면 언젠가는 승리할 날이 오겠지”라는 항일의지를 이 작품에 담은 것이다.
서비홍, 그를 위대한 화가로 중국인들이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불굴의 정신때문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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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9일 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