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좋은 일자리 관점에서 본 한국 고용의 현주소’
2000년대 들어 우리산업의 일자리 현황은 ‘고용 없는 제조업, 좋은 일자리 없는 서비스업’으로 대변되고 있다. 다소 과한 표현이긴 하지만 제조업의 고용유발계수가 감소세에 있으며, 서비스업의 일자리는 음식 및 숙박업, 도소매업 등 생계형 일자리에서 주로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산업연관표 기준으로 보면 제조업의 2011년 일자리(피용자수)는 2000년 대비 약 53만개 증가한데 비해, 서비스업은 356만개 증가해 2000년대 고용 증가는 대부분 서비스업에서 발생하였다. 제조업의 경우 생산성 향상이 더욱 진전되면서 자본 및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변모하였고, 고용흡수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제조업의 고용계수(생산액 당 피용자수)는 2000년 4.4(명/10억원)에서 2011년 1.9로 감소하였다.
서비스업의 경우 연구개발, 회계, 컨설팅 등 고부가가치 업종에서도 일부 고용이 늘어났지만 저부가가치 업종에서 생겨난 일자리가 훨씬 더 많았다. 서비스업의 부가가치 창출능력은 전산업 평균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노동생산성 수준은 미국의 1/3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비스업의 고용계수도 감소하였는데 2000년 생산액 10억원당 11.7명에서 2011년 8.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고용계수와 같은 양적인 지표나 업종별 1인당 부가가치와 같은 평균 개념만을 가지고 산업별 고용현황을 평가하기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에서 늘어난 일자리 중에서도 좋은 일자리가 많을 수 있으므로 고용의 질을 고려해야 한다. 제조업의 고용흡수력이 크게 줄어들었어도 좋은 일자리 수는 오히려 증가했을 수도 있다. 각 산업의 일자리 창출능력을 단순히 양적인 측면이 아닌 고용의 질을 고려해 봄으로써, 더 다각적인 관점에서 산업별 고용현황을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는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라고 할 때는 여러 가지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이다. 근무형태, 즉 생산직이냐 사무직이냐에 대한 선호일 수 있으며, 의사, 변호사 등 특정 직종에 대한 선호가 반영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지역에 대한 선호도도 좋은 일자리에 반영되어 서울 등 수도권의 일자리인지 지방의 일자리인지에 대한 여부도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일자리의 질은 노동 공급자의 개별적 조건에 따른 상대적 판단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산업간 고용의 질적 현황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주관적인 선호보다는 보다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지표여야 한다.
좋은 일자리라는 개념을 비교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순위 정보로의 치환 등을 통해 개인의 일자리 서열을 매길 수 있는 지표가 존재해야 한다. 본고에서는 고용 안정, 경제적 보상, 근무 조건 등 세 가지 지표를 이용하였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중요한 지표로 꼽히는 것은 고용안정성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 고용과 같은 고용의 안정성이 직업선택에 있어 주요 기준이 된다. 공무원, 교사 등 보다 안정적인 직업군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노동력이 몰리는 현상은 고용 안정성에 대한 최근 세대의 선호를 잘 보여준다. 고용안정성에 대한 평가는 상용직 여부를 대용변수로 이용하였다(주요 고용의 질 지표 선정은 BOX 참조).
또 다른 주요 지표는 임금과 같은 경제적 보상 항목일 것이다. 일을 통해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은 일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고려한 지표는 근무조건이다. 근무시간이 과도한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로 평가하기 어려우며, 과소근로 역시 불안한 일자리로 분류할 수 있다. 근무조건으로는 일하는 곳의 작업환경 등도 평가되어야 하나 자료 획득의 어려움과 비교 가능한 순위 지표로 정량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근로시간만을 이용하였다.
선정된 고용의 질 지표를 이용하여 개인의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이를 산업별로 취합하여 봄으로써 개별 산업의 좋은 일자리 비중이 산출 가능하다. 고용의 양적인 측면뿐 아니라 질적인 개선여부의 판별을 통해 각 산업별 일자리 현황을 살펴보도록 한다.
Ⅱ. 산업별 고용 현황
제조업은 좋은 일자리 비중 상승, 서비스업은 정체
고용의 질을 고려했을 때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 비중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2년에는 제조업 일자리 중 22.6%만이 좋은 일자리로 분류할 수 있었으나, 2012년에는 34.8%가 좋은 일자리로 분류되었다. 제조업의 전체 일자리가 53.7만개 늘어난 데 비해 좋은 일자리수는 57.6만개 늘어나 생산성 향상 등으로 새로 생긴 일자리가 주로 좋은 일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기준 제조업의 1인당 피용자보수(산업연관표 2011년 기준)는 4천5백만원으로 전산업 평균 3천7백만원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으며, 1인당 임금 분포를 고려하여도 상위소득(2002년 시급 상위 25% 기준) 피용자 비율이 2012년 31%로 2002년 21%대비 10%p 개선되는 모습이다. 글로벌화로 인해 저부가가치 제조업 분야가 신흥국으로 이전되면서 저임 생산직 일자리수는 감소하였지만, 상위 임금의 좋은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점에서 제조업 전체로는 산업공동화 현상이 진행되었다기보다는 글로벌 분업화를 통한 고부가가치화가 진행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조업의 고용창출능력은 정체되었지만 고부가가치화로 인해 고용의 질은 개선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서비스업의 좋은 일자리 비중은 2012년 29.8%로 2002년 27.6%에 비해 소폭 개선되는 데 그쳤다. 좋은 일자리의 증가수는 137.5만개로 제조업의 약 2.4배 가까운 일자리 수를 창출했으나, 전체 늘어난 일자리수의 39%에 불과한 수치이다.
서비스업의 1인당 피용자 보수는 3천2백만원으로 전산업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며, 상위소득 피용자 비율은 2012년 29%로 2002년 27%에서 크게 개선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더군다나 전체 취업자 중 무급가족 종사자 비율이 서비스업의 경우 4.1%이고, 제조업은 2.0%(지역별 고용조사 자료, 2012년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경제적 보상의 실제 격차는 더욱 클 것으로 유추된다. 사업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영역의 일자리도 크게 늘어났으나, 도소매, 사회복지 서비스 등 생계형 일자리도 크게 늘어났으며, 이들 부문간 생산성 격차도 크게 좁혀지지 못하면서 비율이 개선되지 못하였다.
상용직 비율, 근로시간 개선 뚜렷
2000년대 들어 고용의 질이 뚜렷이 개선된 데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법정 근로시간 준수 등 정책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상용직 비율은 2000년대 들어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임시직 등 기간제 근로자 형태로 2년 이상 계속 고용하지 못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정규직 비율도 2004년 63.0%에서 2013년 67.7%(경제활동인구조사 기준)로 상승하였다. 2006년 법 제정 후 2007년 300인 이상, 2008년 100인 이상, 그리고 2009년 7월부터 5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단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제조업과 서비스업간에, 또는 세부 부문별로 다소 다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의 정규직 비율은 2004년 76.7%에서 2013년 85.7%로 높아진 반면, 도소매, 음식숙박업이나 사업, 개인, 공공서비스업의 정규직 비율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산업, 직업별 고용구조조사와 지역별 고용조사를 보더라도 제조업의 상용직 비율은 소폭 개선된 반면, 서비스업은 오히려 감소하였다.
즉, 전기전자 등 대부분의 제조업들은 상용직 일자리 수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늘어 상용직 비율이 개선되는 등 정책 변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만 섬유 및 가죽업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경우 상용직 비율이 감소하거나 상용직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 정책변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만은 아님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금속제품업, 수송장비업의 경우에는 상용직 수는 늘어났으나 비율은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개선 여지가 여전히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업의 경우 상용직 일자리 수는 크게 늘었으나, 임시직, 일용직 일자리 수가 더 빠르게 증가하여 비율은 오히려 악화된 경우이다. 통신 및 방송업, 금융 및 보험업, 교육 및 보건업을 제외한 서비스업 대부분의 상용직 비율이 정체되거나 줄어들었다. 이는 정규직 전환보다는 계약 종료 후 비상용직의 신규채용을 선호했거나, 자영업 창업 등으로 인해 임시직, 일용직 형태로 신규 고용되는 비율이 오히려 증가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비정규직법의 예외조항으로 적용 받는 공공서비스 분야의 경우 비정규직 형태의 고용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이며, 청소, 보안용역업과 같은 기타사업 서비스업나 사회서비스업도 최근 임시직, 일시직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부문이다.
근로시간의 경우 2000년대 들어 가장 뚜렷하게 변화되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표이다. 제조업, 서비스업 공히 많은 일자리가 과거 과다근로에 노출되어 있었다. 2004년 이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법정근로시간이 주 5일제 적용기준 40시간(12시간 연장 가능)으로 바뀌면서 2000년대 후반 들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대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어 오던 법안이 2011년 7월 이후 2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도 적용되면서, 시행 7년만에 5인 이상 사업체 모두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게 되었다. 다만 최근의 논란과 같이 법정근로시간에는 휴일 근로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 등 실제 조사 결과에는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나타나 여전히 평균 근로시간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법정 근로시간 범위에서 일하는 임금근로자의 비중은 전산업 기준 47.9%에서 69.2%로 크게 상승하였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법 적용 전 47%만이 적정 근로시간 조건에 속하는 일자리였으나, 2012년에는 74%로 크게 개선되었다. 서비스업도 50%에서 69%로 비율이 늘어났다. 다만 음식점 및 숙박업의 경우 37%의 일자리만이 법정 근로시간 범위 하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육상운송업도 54%에 불과해 근무조건이 열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제조업의 평균 근로시간은 서비스업에 비해 높은 편이나 섬유 및 가죽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70% 이상의 일자리가 적정 근로시간 하에서 근무하고 있다.
제조업, 저부가 일자리 유출 속에 좋은 일자리 비중은 상승
전체 일자리 수의 증감과 좋은 일자리의 증감을 세부 부문으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전체 일자리 창출은 주춤하고 있으나 좋은 일자리는 늘어나는 글로벌 분업형인지, 아니면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이 함께 둔화되는 생산지 이전 형인지 분류해 볼 수 있다. 평균 고용증가율을 이용해 제조업의 고용현황 유형을 나누어보면, 일자리 유지형, 글로벌 분업형, 일자리 유출형 등 세 가지 유형으로의 분류도 가능하다.
예컨대, 수송장비산업 중 자동차, 선박이나 전기전자산업 중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자기기부분품 등 우리의 주력산업이라 할 수 있는 제조업들은 2000년대 고용을 확대해 왔으며, 그 중 좋은 일자리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전체 고용이 연평균 3.5% 증가하였으며, 좋은 일자리는 9.5%씩 늘어 좋은 일자리 비중이 2002년 23.7%에서 2010년 42%로 크게 개선되었다. 일자리의 40% 이상이 상위소득 일자리로 분류되며, 평균 근로시간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2002년 55.3시간에서 48.8시간으로 개선되었다. 상용직 비율은 92.9%에서 90.2%로 다소 낮아졌는데 타 산업에 비해서는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전기전자산업 중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자기기부분품 부문도 자동차 부문과 유사한 고용 현황을 보인다. 전체 일자리가 연평균 3.9%로 전산업 평균보다 많은 일자리가 늘었으며, 좋은 일자리도 연평균 8.9%로 증가하여 좋은 일자리 비중이 크게 개선되었다. 2000년 26.5%에서 42.3%로 약 15.8%p 증가하였다. 일자리의 39%가 상위소득 일자리로 분류되며, 평균 근로시간은 2002년 53시간에서 47시간으로 개선되었다. 상용직 비율도 89%에서 92%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산업들은 해외 생산시설 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높은 경쟁력을 통해 국내 고용도 유지하는 산업군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같은 전기전자 부문이지만 가정용 전기기기는 전체 고용의 증가율이 연평균 0.5%로 크게 둔화된 반면 좋은 일자리는 4.8%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좋은 일자리 비중은 28.4%로 2002년 대비 약 9.8%p 증가하였으나, 전체 고용이 크게 늘지 않고 있는 산업군이다. 결국 단순 조립, 가공등 저부가 노동집약적 일자리는 신흥국 생산거점으로 이전되고, R&D 등 고임금 일자리가 증가하는 글로벌 분업현상이 나타나거나 자본 및 설비 고도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컴퓨터 및 사무기기의 경우에는 전체 고용이 연평균 6.9%씩 감소하였고, 좋은 일자리도 5.5%씩 감소하는 등 일자리 유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쟁우위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산업공동화 현상이 나타나 고용현황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또 다른 산업군으로는 섬유 및 가죽 제품 부문을 들 수 있다. 전체 고용은 연평균 5.1%씩 감소하고 있으며, 좋은 일자리수도 1.9%씩 감소하는 등 일자리 유출이 일어나고 있다. 1인당 피용자 보수는 2011년 기준 2천9백만원으로 전산업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비용에 따른 또는 경쟁력 상실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다.
서비스업, 생계형 일자리와 고부가가치형 일자리로 양극화
서비스업도 좋은 일자리수가 늘어나고 소폭이지만 비율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인다. 전체 서비스업 일자리는 2000년 이후 연평균 4.1% 증가하였고, 좋은 일자리 수도 연평균 5.4% 증가하였다. 다만 세부 부문별로 살펴보면, 특히 고용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분야에서 부문간 고용의 양극화가 뚜렷이 나타나 전반적으로 고용의 질이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서비스업 중 2000년대 들어 고용이 가장 빠르게 늘어난 두 부문은 사회복지 서비스와 청소, 경비 등 기타사업서비스 부문이다. 이들 부문의 고용은 각각 연평균 20.6%, 12.8% 증가하였다. 사회복지 수요의 증가, 고령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정부의 적극적인 고용정책 등으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부문이다. 그러나 이들 부문에서 차지하는 좋은 일자리 비중은 각각 6.1%, 11.4%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생계형 일자리 업종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분야는 임시직 및 일용직 비중이 각각 34%, 38%로 타부문에 비해 높다. 저부가가치, 비숙련 노동의 유입 증가로 생산성이 하락한 대표적인 분야이며 일인당 피용자보수는 각각 천9백만원, 2천4백만원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상위소득자 비율도 6%와 11%에 그치고 있다.
반면에 고용이 빠르게 늘어난 부문 중 연구기관, 사업관련 전문서비스 분야는 좋은 일자리 비중 역시 높아서 가장 바람직한 분야로 꼽힌다. 이들 부문은 2000년대 각각 9.2%, 7.4%씩 고용이 늘어난 분야이면서 좋은 일자리 비중도 71%, 55%로 매우 높기 때문이다. 피고용인 중 50% 이상이 전산업 기준 상위 25% 임금을 받으며, 상용직 비율도 90%를 웃돈다.
이 밖에 고용비중이 높은 순으로 보아도 부문간 양극화 현상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전체 서비스업 고용 중 각각 15.5%와 8.2%를 차지하는 도소매업과 음식점 및 숙박업의 좋은 일자리 비중은 21.1%와 3.9%에 불과한 반면, 12.6%와 8.2%를 차지하는 교육서비스와 금융 및 보험업에서의 비중은 각각 41.8%와 55.6%를 기록하고 있다. 서비스업의 경우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종사자 비율이 높아 피고용인 현황만을 가지고 고용 상황을 평가하는 것은 현실을 다소 왜곡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좋은 일자리 비중이 낮은 부문에 영세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 비율이 높은 업종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고용의 질을 고려한 전반적인 고용현황은 제조업에 비해 좋지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Ⅲ. 산업정책을 위한 제언
서비스 시장만 확대? 근본적 해결책 못돼
우리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고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서비스업 등 대외 충격이 적은 내수시장 확대를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분석을 통해 드러난 산업별 좋은 일자리 성적표를 보면 서비스 시장 확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함을 확인할 수 있다. 서비스 부문이 제조업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은 분명하지만, 좋은 일자리 비중이 12%p 이상 늘어난 제조업과 달리, 서비스 부문에서는 좋은 일자리와 그렇지 않은 일자리가 거의 비슷한 속도로 증가해 업종 내 소득 양극화가 점점 더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경우 상품 교역을 매개로 간접적이나마 국가 간 일자리 이동과 같은 효과가 발생해 관련 업종 종사자 간 경쟁 및 생산성 향상, 그리고 그 기여도에 걸맞은 보상 확대 등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서비스업은 업종 고유의 특성 상 국가 간에 꽤 높은 진입 장벽이 존재하며 이런 장벽은 효율적 자원 배분을 저해한다. 그 결과 절대적 기준에서 대우가 좋지 않은, 그러나 부가가치 기여도 역시 낮아 추가적인 보상을 요구하기 어려운 일자리가 늘어나기 쉽다. 물론 진입 장벽 탓에 과도한 보상을 받는 일자리가 일부 생겨나기도 하지만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즉, 제조업이건 서비스업이건 좋은 일자리 창출의 전제 조건은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준비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서비스 시장만 확대하는 것은 좋은 일자리 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최근 우리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저조한 것은 쉽게 말해 리스크에 비해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들이 국내투자를 크게 늘릴 경우 진입 장벽이 높은 서비스 분야에 몰리기 쉽고, 이는 결과적으로 저부가 일자리가 양산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아울러, 제조업 투자 확대를 촉진하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 정책 역시 자칫 시장 개입이 과도해 자원 배분을 왜곡하면 처음 기대와 달리 국내에서 구직자를 찾기 힘든 일자리만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지속적인 고용의 질 개선 위해서는 산업정책의 패러다임 변화 필요
물론 좋은 일자리 확대를 위한 정책 개입은 필요하다. 특히 근로시간 적정화, 정규직 전환 등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한 근무조건 개선과 고용안정성 보장 관련 이슈들은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고용안정에 대한 가치 평가를 시장의 기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여전히 우리나라는 과다 근로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다 근로에 따른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 산업재해 등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실제 법정근로시간의 제도적인 강제에도 불구하고 국내 근로자들은 휴일근로 등의 형태로 OECD 평균인 1,692시간보다 연간 424시간이나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숙련노동의 필요성이 다소 낮은 영세 서비스업 등의 경우에는 정규직 전환을 기피하고 재고용을 통해 고용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아 고용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여전히 더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정책은 기업 입장에서는 직접비용의 상승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제조업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창출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이와 같은 직접 노동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기꺼이 머물도록(retain) 만드는 산업정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적절한 산업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동안 일자리를 유지해 오고 좋은 일자리를 늘려왔던 제조업 분야들조차 일자리 유출형 제조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처럼 부지 제공, 법인세 감면 등 직접적인 인센티브 제공만으로는 제조업의 고용창출 능력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직접 생산비 지원 혜택은 신흥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위라는 점에서다. 그러므로 최근 미국 등 선진국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자본 접근 효율성, 클러스터 조성 등 신흥국 대비 비교우위가 있는 질적인 측면, 예컨대 경영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시키고, 제조기반 강화 등 외부효과를 높일 수 있는 정책들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최근 융합과 협력을 강조하는 창조경제가 화두가 되고 있듯이 향후 산업 발전은 단일 기업의 독자적인 성장보다는 생태계 단위의 공생발전 구도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자본 조달, 경쟁력 있는 인재 확보 등 선진국들의 비교우위가 더욱 부각되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대응 여부에 따라 기회이자 위협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독일의 제조업 경쟁력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우수한 소재 및 부품 경쟁력, 클러스터 기반 등 충분한 산업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다면 법인세 인하와 같은 직접적인 인센티브 제공 만으로는 제조기업의 지속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조업내 서비스 영역 확대가 ‘일자리 빼기’ 형 성장의 대안
그렇다면 정부의 산업정책은 어떤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기본적인 원칙은 각 업종의 생애주기(life-cycle)에 비춰볼 때 좋은 일자리가 점점 늘어나는 성장 단계에 있는 ‘일자리 더하기’ 형 업종을 중점 육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생애주기 관점에서, 모든 업종은 처음 시작되는 발아 시점에는 일자리 수가 적고 고용의 질도 높지 않지만,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 규모가 커지면 점차 일자리 수와 고용의 질 양 측면이 함께 개선되는 성장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를 지나면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동화와 효율화 등을 통해 일자리 수를 줄이거나, 업종 내 종사자들 스스로 고용을 효율화해 1인당 보상을 키우는 성숙기에 접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모든 업종은 성장을 계속하는 한 생존을 위한 비자발적 선택이건, 이윤 동기에 의한 자발적 선택이건 ‘일자리 빼기’ 형 성장 단계로의 이동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 지원은 향후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발아 단계나 성장 단계 업종에 보다 집중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일자리 빼기’ 형 성장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해당 산업의 과실을 좀 더 생산적인 주체들에게 몰아주는, 즉 인센티브 기반의 동기 부여를 통해 전체적인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매우 큰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일자리 빼기 형 성장은 좋은 일자리 확대와 전체 일자리 감소 측면을 함께 가진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으나, 산업정책이 가져야 할 공공선택적 특성에 비춰볼 때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일자리 더하기 형 업종에 먼저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좋은 일자리 확대를 위해 한국경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안 중 하나는 제조업내 서비스 영역의 확대이다. 제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단계별로 분해해보면 기계를 돌리고 볼트, 너트를 조이는 등의 전통적인 ‘제조’ 영역과 디자인이나 마케팅, 유통 등이 속한 ‘서비스’ 영역이 혼재되어 있다.
제조 영역의 경우,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에서 강조되어 온 근면성과 정확성을 핵심 가치로 활용해왔다. 즉, 적기(just in time)에 대량 생산하는 능력이 생존 가능성을 결정하는 상황에서는 정해진 업무를 누가 더 부지런히, 그리고 정확히 처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경쟁력이기에, 이 한 두 가지 척도를 ‘좋은 인재’의 선발 기준으로 활용하고, 이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교육이나 평가 과정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런 역량, 즉 ‘근면성’과 ‘정확성’은 요즘처럼 기계나 컴퓨터 기술이 발전할수록 자동화와 외주화가 손쉬워 점점 그 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제조 영역의 수요가 아무리 커져도 좋은 일자리의 지속적 확대는 쉽지 않다.
반면, 서비스 영역은 다양한 형태의 아이디어와 독창성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3D 프린터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제품 개발 등을 통해 성장 엔진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즉, 경쟁의 기준이 다양하고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그 폭의 지속적인 확대가 가능해서 현재 젊은 세대의 일자리 수요와도 잘 어울린다. 다만, 현재의 구직자들 중에 이런 수요에 걸맞게 잘 훈련된 적절한 인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향후 우리 사회와 산업계가 함께 극복해야 할 한계로 꼽힌다.
이처럼 제조업 내의 서비스 영역뿐 아니라 제조업 밖에서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는 통신, 금융 및 사업서비스 등 생산자서비스도 좋은 일자리 관점에서 유망한 분야이다. 좋은 일자리 비중이 높고 구직자들에게도 매우 선호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자서비스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이 취약해 독자적 성장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리 경제의 총 부가가치 중 생산자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 수준으로 30%를 웃도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며, 국내 제조업의 생산자서비스 활용 정도인 중간투입비율 역시 9% 정도로 주요 선진국의 10~14%와 비교하면 크게 낮은 상황이다.
이처럼 생산자서비스의 비중이나 기여도가 낮은 것은 우리나라의 상당수 제조업체들이 국내 생산자서비스의 경쟁력에 만족하지 못해 그룹 내부 기능(in-sourcing)으로 해결하거나 필요 시 해외 업체의 서비스를 활용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면, 중소기업들의 경우 영세업체여서 생산자서비스를 자비 부담으로 온전히 활용할만한 재무적 여력이 없거나 그 필요성과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열악한 수요 기반이 다시 생산자서비스, 나아가 제조업내의 서비스 영역 확대를 가로막는 악순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특히 아직 국내시장에 머물고 있지만 기술이나 제품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확대를 위해서도 생산자서비스의 국제경쟁력 강화는 필수적이다. 공동 컨설팅 창구 마련 등 중소기업의 생산자서비스 접근도를 개선시킴으로서 중소기업뿐 아니라 생산자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함께 제고하고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양질의 폭 넓은 산업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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